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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치에]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하나무라 요스케 x 사토나카 치에

 

 

 

 

사방이 시끌벅적한 말소리와 지글지글 철판이 달궈지는 소리로 가득 찼다. 하나무라는 소음의 한복판을 걸으며 오늘은 학교가 무척이나 시끄럽다고 생각했다. 축제니까 떠들썩한 게 당연한데도 오늘따라 일이 잘 풀리지 않는 이에겐 별게 다 신경을 거슬렀다.

 

오늘 하나무라는 자유 그 자체였다. 누군가는 동아리 활동으로 누군가는 학급에서 배정받은 임무로 전교를 누비고 다녔으나 맡은 역할을 적당히 같은 반 친구에게 넘긴 하나무라는 예외였다. 자유. 누구나 부러워할 법한 단어를 갖고서도 하나무라는 연신 언짢은 기분을 숨길 수가 없다. 계획이 틀어졌기 때문이다. 저보다 성실한 나루카미는 반에서 계획한 사진 전시회에 오전 스텝으로 자리를 지켰다. 귀신의 집과 카페, 타로점 등등을 두고 누가 사진 전시같이 따분한 걸 찾겠냐고 생각한 하나무라와 달리 나루카미는 어깨를 한 번 으쓱할 뿐 다른 말은 없었다. 그래서 하나무라는 땡땡이를 쳐놓고도 오전엔 옥상에서 시간을 때우고 오후에 나루카미를 만나 같이 교내를 돌아다녀야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물론 나루카미에게 묻진 않았으나 어차피 나루카미도 제가 없으면 혼자일 게 불 보듯 뻔했기에 묻거나 말거나였다.

 

안일하게 생각하고 플랜B를 염두하지 않은 하나무라가 교실로 내려갔을 때 나루카미는 그곳에 없었다.

 

“걔 아까 아마기랑 같이 나갔는데?”

 

양 옆으로 포장마차가 늘어진 교정을 정처 없이 걸으며 하나무라는 그 둘이 언제 그렇게 친했지? 하고 골몰했다. 아니, 친하긴 친했지만. 어떻게 파트너를 빼고 홀라당 아마기랑 놀 수가 있냐? 하나무라는 3 살배기 어린아이처럼 툭 튀어나온 입을 갈무리 하지도 않았다. 아주 섭섭해서 죽을 맛이었다.

 

“야, 하나무라!”

 

기껏 땡땡이를 쳤음에도 일이 풀리지 않자 배신감에 찌들어갈 무렵이었다. 사람을 헤집고 걷다가 얼핏 저를 부르는 듯한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하도 사람이 많아서 시선이 갈피를 못 잡고 방황했으나 이내 제게 손을 흔들고 있는 나가세가 보였다. 단숨에 간이 천막 앞까지 가니 나가세가 대뜸 그런다.

 

“타코야끼 사 먹어라. 3백 엔.”

“몇 개 줄 건데?”

“6개.”

“야. 됐다, 됐어. 이런 데서 누가 그 돈 주고 사 먹냐?”

 

손님이 영 없는지 동그란 홈이 파인 철판 위로 얼룩덜룩한 색의 타코야끼가 완성된 채 줄지어 서있었다. 대충 봐도 여자 손님이 7할인데 그들을 꼬시기엔 타코야끼의 모양새가 엉망이었다. 속으로 흉보는 줄도 모르고 타코야끼에 관심이 있는 줄 착각한 나가세가 지금 사면 두 개를 더 주겠다며 넌지시 말을 건넨다. 이거 먹을 수 있는 건 맞냐? 한쪽 눈을 찡그리며 묻자 간판 아래로 쑥 팔이 튀어나오더니 어깨를 퍽 때렸다. 정말로 퍽 소리가 났으나 그렇게 아프진 않았다. 죽을래? 아직 죽고 싶진 않은 하나무라는 어깨를 감싸 쥐고 아픈 척 앓는 소리를 낸다. 오바하지 마, 그렇게 세게 안 때렸거든. 가게 앞에서 만담을 펼치는 사이 손님이 왔다. 나가세가 손님을 응대하는 틈을 타 하나무라는 나중에 병원비를 청구하겠다는 말과 함께 도망쳤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시키는 일이나 할걸. 건물 안으로 들어선 하나무라는 귀신의 집 앞에서 바쁘게 움직이는 학생들을 보며 뒤늦은 후회를 했다. 시키는 일을 얌전히 했어도 후회는 했을 것이라 의미 없는 생각이었으나 지금처럼 지루할 바엔 차라리 뭐라도 하는 게 나았다.

 

어느새 계단을 몇 층 올라온 하나무라가 한 층 더 계단을 오르기 전 익숙한 인영을 발견한다. 뒷모습이지만 짧은 머리칼과 선 자세 같은 게 영락없는 사토나카였다.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사토나카! 서둘러 다가가며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듯 굴었다. 사토나카는 평소에 걸치던 녹색 져지는 어따 팔아먹었는지 와이셔츠와 치마라는 단정한 차림새에 설상가상으로 분홍색 앞치마까지 걸치고 있었다.

 

“뭐야?”

 

저도 모르게 튀어나간 하나무라의 말에 사토나카가 인상을 팍 찌푸렸다.

 

“뭐가?”

“아니, 와…. 진짜 안 어울린다….”

 

사토나카는 대답대신 얼빠진 얼굴로 선 하나무라의 옆구리에 어퍼컷을 날렸다. 얻어맞은 옆구리를 부여잡고 낑낑대는 사이 사토나카가 그대로 등을 보이며 멀어지는 것을 보며 하나무라는 다급하게 이름을 불러댔다. 귓등으로 듣던 사토나카는 그 입에서 제발이라는 단어가 나오고서야 걸음을 멈췄다. 허리를 숙인 탓에 평소보다 눈높이가 낮았다. 시선을 조금 아래로 내린 사토나카가 훤히 보이는 정수리로 아프지 않게 주먹을 내리 꽂는다.

 

“농담이라니까. 조크 몰라?”

“내가 한 번만 속아준다.”

“그래서 그 꼴을 하고 여기서 뭐 하는데?”

 

‘그 꼴’이라는 단어에 심기가 거슬렸으나 가볍게 무시한 사토나카가 한 걸음 물러나더니 가려진 입간판을 향해 손짓했다. CAFE. 대문자로 쓰인 문자 옆으로 분홍색 꽃 모양과 알록달록한 선이 꾸며진 것을 다소 멍청하게 보다가 그래서? 하고 더 멍청한 질문을 했다.

 

“홍보 중.”

 

아주 짧은 답에도 하나무라가 이해하지 못하고 서있자 사토나카는 답답한 나머지 조금 짜증스럽게 말을 덧붙인다.

 

“재즈연구부에서 하는 카페에 사람이 안 와서 호객행위 중이라고!”

 

그제야 하나무라는 문 너머로 고개를 쭉 빼고선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교실을 한 번 훑는다. 빈 테이블이 많았다. 우리 학교에 이런 부가 있었냐. 혼잣말에 사토나카는 성실하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근데 넌 재즈연구부를 어떻게 알고 도와줘? 사토나카 넌 부활동 안 하잖아?”

 

불확실한 마음에 의문형으로 끝을 맺었음에도 사토나카는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부원인 애랑 어쩌다 친해져서 도와주는 거야. 그러는 너는 여기서 뭐하는데?”

“돌아다녔지 그냥. 좀 심심해서.”

“심심하다고? 너 오후에 스텝하기로 하지 않았…. 야, 하나무라 너 설마.”

 

사토나카의 얼굴에 금세 먹구름이 꼈다. 가늘게 눈을 뜨고 흘기는데 등 뒤로 땀이 뻘뻘나는 기분이라 하나무라는 저도 모르게 침을 한 번 삼켰다. 교대했어, 교대. 황급히 덧붙인 말을 별로 믿지 않는 눈치였으나 사토나카는 추궁하는 대신 무작정 하나무라의 팔을 잡고 교실 안으로 밀어 넣었다. 야, 야야. 사토나카. 강제로 착석까지 시킨 후 손님 오셨어요, 하며 교실 앞쪽의 다른 학생들에게 발랄한 목소리로 일렀다. 지킬 앤 하이드가 따로 없다.

 

심심한 김에 손님 역할이나 좀 하라는 말과 함께 내밀어진 메뉴판을 얼떨결에 받고 나니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다. 이렇게 따분하고 어울리지 않은 장소에 앉고 싶어서 땡땡이를 친 게 아닌데 메모지를 들고 기다리는 사토나카를 보니 나를 좀 보내달라는 말이 나오질 않았다.

 

“…사토나카. 나 심심하다니까.”

 

그건 그러니까 너도 여기서 남의 일 하느라 시간 낭비 말고 지금이라도 나랑 같이 튀자와 동의어였다. 돌아오는 답이 없었으나 하나무라는 눈만 마주쳐도 사토나카가 하고 싶어하는 말을 쉬이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어쩌라고? 아주 차갑기 짝이 없었다. 서늘한 온도에 머리털이 쭈뼛 서는 듯한 착각이 든다. 그래서 하나무라는 조용히 메뉴가 빈약한 메뉴판을 꼼꼼히 들여다보는 척 시선을 피했다. 히비스커스 차, 루이보스 차, 무슨 차…. 온통 난해한 이름으로 점철된 tea는 가볍게 패스하고 커피와 음료를 사이에 두고 고민했다. 사실은 고민할 것도 없이 오렌지주스를 달라고 하고 싶었건만 재즈음악이 흘러나오는 고풍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주스 따윌 선택하는 건 너무 어린애 같았다. 사토나카도 보고 있는데. 아니, 사토나카가 보고 있다고 뭐가 달라지는 건 아니지만.

 

“커피로 하나 줘.”

 

사토나카와는 전혀 상관없이 이건 그냥 자존심의 문제라고. 아무도 묻지 않았는데 속으로 되뇐다. 여유로운 척 허공을 응시하다가 주문을 받고 사라지는 뒷모습을 몰래 훔쳐보았다.

 

잠시 후 그럴싸한 커피 한 잔이 하나무라의 앞에 놓였다. 여전히 분홍색 앞치마를 맨 사토나카는 조심스러운 몸짓으로 잔을 내려놓으며 맛있게 드세요, 란 말까지 덧붙였다. 진짜 안 어울렸다. 평소라면 좀 더 활기찬 목소리로 말을 했을 텐데. 왜 자꾸 시비를 거냐고 화를 낼까봐 구태여 말하진 않았다.

 

“언제 마쳐?”

“어지간히도 심심한가보구나.”

 

뭔갈 생각하는 듯 사토나카는 한숨과 함께 하나무라를 응시하더니 잠깐만 기다리라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방금 한심하다고 생각한 거 같은데. 그래도 허리춤에 단단히 묶어둔 앞치마 끈을 푸르며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 말을 건네고 있는 사토나카를 보니 아무렴 어떤가 싶었다.

 

사람이 하나 늘어났다고 갑자기 할 게 생기는 건 아니었다. 두 사람은 어느새 건물 밖으로 나와 포장마차가 길게 늘어진 교정을 걷고 있었다. 하나무라는 굳이 제가 방금 이곳에서 왔음을 말하지 않았다. 나 오늘 점심도 제대로 못 먹었어. 밖에 스테이크 파는데 있다던데 가봤어? 거기 맛있대. 카페를 나오면서 사토나카가 그리 말했기 때문이다. 스테이크 같은 걸 파는 곳이 있었나. 아무리 떠올려 봐도 하나무라의 기억 속엔 지겹도록 새까만 뒤통수만 가득했다.

 

겨우 발견한 스테이크 가게를 앞에 두고 하나무라는 제가 못 본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이 매대 앞으로 사람이 바글바글해서 거기서 스테이크를 파는지 사탕을 파는지 위로 불쑥 튀어나온 간판을 유심히 보지 않는다면 못 보고 지나칠 가능성이 농후했다.

 

“음- 냄새 진짜 좋다.”

 

사토나카는 줄을 선 채 목을 쭉 빼고 앞을 보려고 했다. 긴 줄과 작은 키 때문에 제대로 보이는 것 없이 냄새만 맡는 게 전부였다. 발뒤꿈치까지 들고 서성대는데 그걸 바로 뒤에서 라이브로 관람하고 있던 하나무라는 문득 들어줘야 하나를 고민했다. 뒤에서 허리춤을 끌어안고 번쩍 들어 안으면 보일 것도 같은데. 그런 생각을 했다가 눈을 크게 떴다. 미친 제정신이냐? 하나무라는 저도 모르게 제 뺨을 짝 소리가 나도록 때렸다. 그 소리에 깜짝 놀란 사토나카가 뒤를 돌아보자 하나무라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체 대답했다.

 

“모, 모기가….”

 

자기도 모르게 말을 좀 더듬었지만.

 

“소금이랑 양파 시즈닝이 있대. 뭐 먹을까?”

“둘 다 먹던가.”

“둘 다 사주려고?”

“내가 왜 사?”

“원래 데이트하자고 한 사람이 사는 거 아니야?”

“뭐? 데이트? 누가 너랑 데이트를 하냐?”

 

거기서 또 한참을 시끄러웠다. 그럼 굳이 일하는 사람 끌고 온 건 뭐냐. 심심해서 그런 거지 데이트는 아니다. 한 치도 물러나지 않고 투닥거리는 사이 차례가 다가와서 얼결에 주문은 사토나카가 계산은 하나무라가 했다. 자연스럽게 300엔을 주문받는 남자에게 넘기면서도 하나무라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뭔가 사기라도 당한 기분.

 

“남자친구분은 뭘로 드릴까요?”

“남자친구 아니거든요!!”

 

맞춘 것도 아닌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두 사람이 동시에 소리쳤다.

 

 

*

 

 

배가 좀 차고 나니 슬슬 또 움직이고 싶었다. 운동장 쪽으로 가보자. 분명 운동부에서 무슨 행사 같은 거 하고 있을걸? 어떻게 그리 잘 아는지. 분명 저와 같이 이 학교에 입학해서 똑같이 1년 반을 다녔을 텐데도 사토나카는 아주 자연스러웠다. 그 말대로 운동장 쪽으로 가니 코트와 체육관 앞에 부스와 간판이 설치되어 있었다.

 

길쭉하고 덩치 있는 운동부원들이 두 사람을 발견하자 갑자기 손을 흔드는 둥 아는 체를 해왔다. 방과 후 운동은 무슨 집에 가기 바빴던 하나무라가 갑작스러운 관심이 부담스러워 주춤 거리는 동안 사토나카는 망설임 없이 그들의 앞에 다가섰다.

 

“어이 사토나카, 아마기는 어디 두고 혼자야?”

“내가 애야? 유키코는 오늘 바빠.”

“집 때문에?”

“아니. 오늘은 약속이 있대.”

 

처음 보는 덩치와 사토나카가 정겹게 대화를 나누는 동안 하나무라는 한 걸음 뒤에 벙찐 표정으로 서있었다. 상황이 하나무라는 따돌리는 것처럼 도무지 이 전개를 따라갈 수 없었다. 아마기가 다른 사람과 약속이 있다는 말에야 아 그래서… 따위의 생각을 했을 뿐이다.

 

왜 저렇게 친하지? 아니, 사토나카는 원래 그런 녀석이지만.

 

“게임할래? 우리 부원이랑 1 on 1해서 이기면 상품 줄게.”

“어떻게 이겨 그걸.”

“혼자 하는 것도 있어. 다섯 번 던져서 3번 넣으면 과자 5개 다 넣으면 열쇠고리.”

“하나무라 어때? 할래?”

“아니. 난 됐어.”

 

좀 떨떠름한 기분이라 그랬다. 사토나카와 같이 온 건 전데 꼭 사토나카와 다른 학생들이 노는 곳에 제가 눈치 없이 끼어있는 기분이었다. 싫으면 말고. 사토나카는 두 번 묻지 않았다.

 

참가비 2백 엔은 통에 넣으면 돼. 사토나카는 시키는 대로 통 안에 동전을 굴려 넣고 팔을 쭉 늘려 스트레칭을 했다. 두 팔을 교차한 상태로 팔꿈치를 꾹꾹 누르는 걸 양쪽 번갈아 하더니 무언가 생각난 듯 하나무라를 돌아본다.

 

“하나무라, 자켓 좀 빌려줘.”

 

자켓? 왜? 물으면서도 하나무라는 순순히 자켓에서 제 팔을 뺀다. 자켓을 건네받은 사토나카는 그걸 허리춤에 꽉 묶더니 저지를 부실에 놓고 왔다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여전히 이해가 가질 않았다.

 

사토나카는 3개의 골을 넣었다. 마지막 슛이 아슬아슬하게 골대를 둥글게 따라 그리며 애를 태우더니 결국 밖으로 튀어 나갔다. 아아. 탄식하는 사토나카에게 과자가 부상으로 주어졌다. 하나무라는 조금 전까지 보았던 사토나카의 플레이를 되새겨 본다. 높게 제자리 점프를 할 때마다 위로 뜨는 치마가 거슬리는지 갈수록 행동이 대담하지 못했다. 허리에 꽉 묶은 자켓이 어느 정도 가려주긴 하지만 자연스러운 부분은 분명 있었다. 교복이 아니라 체육복이었다면 4개는, 아니, 5개도 거뜬히 넣었을 것 같다.

 

“아, 할 수 있었는데!”

 

분이 풀리지 않는지 소릴 높이는 모습을 보며 하나무라는 잠시 망설이더니 셔츠 소매를 슬그머니 걷기 시작했다. 농구를 잘 하진 못하지만 두세 번 해보면 다섯 개는 들어가겠지. 어디까지나 가벼운 마음이었다.

 

할 마음이 겨우 들었는데, 그게 발현되기도 전에 소강됐다. 처음 사토나카에게 아는 체를 한 농구부원이 사토나카에게 분홍색 곰 모양의 열쇠고리를 내밀었고 하나무라는 의도치 않게 바로 옆에서 그걸 봤다. 응? 제 앞에 들이밀어진 상품에도 사토나카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남자는 고생했으니 주는 거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눈까지 접어가며 쇼하는 걸 라이브로 관람하며 하나무라는 속으로 코웃음을 친다. 이거 참.

 

“지금 부장 없으니까 빨리 가져가.”

“진짜 가져도 돼?”

 

고생 같은 소리 한다. 하나무라의 표정이 묘하게 변해가는지도 모르고 두 사람은 여전히 둘만의 세계였다. 정확히는 남자가 일방적으로 사토나카와 둘만의 커넥션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꼭 조만간 웃기지도 않는 이야기를 할 것처럼.

 

“야 사토나카 출출하지 않냐? 타코야끼 먹으러 가자.”

 

말을 하고 나서야 조금 유치하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다. 둘만의 세계에 눈치 없이 끼어든 이방인을 남자는 마음에 안 든다는 기색을 숨기지도 않고 노려본다. 그때서야 하나무라는 남자가 처음부터 저를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참아주는 것도 한 두 번이지 멀쩡한 사람을 옆에 두고 분위기를 잡는 건 좀 재수가 없었다.

 

“뭐어? 우리 좀 전에 뭐 먹었잖아?”

“그걸로 배가 차냐?”

“하나무라 너 오늘따라 평소보다 더 막무가내다?”

 

잠깐만 좀 기다려봐. 귀찮다는 듯 하나무라를 달랜 사토나카가 남자에게 손에 쥔 열쇠고리를 흔들어 보이며 웃었다. 고마워. 잘 받을게. 그런 말에 남자가 나중에 또 놀러오라며 수작을 부려댔다. 빨리 가자아아. 하나무라는 마트 계산대 앞에서 엄마를 조르는 어린아이처럼 말꼬리를 질질 끌어가며 분위기를 망쳤다.

 

다시 포장마차가 있는 곳까지 걸어오고 나서야 사토나카는 말려 올라간 하나무라의 셔츠를 발견하고 물었다. 혹시 너도 하고 싶었어? 돌돌 말아 올린 셔츠를 다시 내린다는 걸 그때까지 잊고 있었다. 아니, 좀 더워서. 10월이 가까워 오는 날의 오후가 덥지는 않았으나 그리 추운 것도 아니라 사토나카는 그러려니 했다. 그래? 궁금하지도 않으면서 의문형으로 끝을 맺고는 좀 전에 받은 열쇠고리만 눈으로 조목조목 뜯어본다. 빨간색에 가까운 분홍색 몸체에 작은 눈과 웃고 있는 입매의 곰모양 열쇠고리가 딱히 탐이 나진 않았다. 그저 골 다섯 개를 넣고 싶었을 뿐이다. 그렇지만 굳이 받은 선물은 볼수록 나쁘지 않았다.

 

“야, 사토나카.”

“응?”

 

벤치와도 떨어진 길목엔 인파가 비교적 적었다. 열 발자국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쓰레기통 때문에 오가는 사람이 많을 뿐이다. 산지 80년이 됐다는 나무가 만든 커다란 그늘이 하나무라의 얼굴에 드리워져 있었다. 소음 소리가 멀리서 고인채로 이쪽으로 흐르지 않는 듯이 한 순간 주위가 정적이었다. 평소처럼 대답을 하면서도 사토나카는 본능적으로 뭔가 분위기가 다르지 않나, 그런 생각을 했다. 하나무라는 실컷 불러놓고 잠시 망설였다.

 

“너…. 왜 이렇게 인기가 많냐?”

“지금 나랑 싸우자는 거지?”

 

그리고 전해온 질문에 퍽 짜증이 났다. 가감 없이 눈썹을 구긴 사토나카가 한심하다는 듯이 하나무라를 올려다보다 성큼성큼 앞서 걸었다. 하나무라가 시비를 거는 것엔 적응되어 있었음에도 평소보다 더 짜증이 난 건 멍청한 질문을 듣고 나서야 저도 모르게 조금 긴장했다는 걸 깨달은 탓이었다. 긴장할 일 따위 하나도 없는데.

 

“같이 가.”

 

뒤늦게 하나무라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사토나카가 돌아보거나 멈추질 않아서 하나무라는 보폭을 좀 더 크게 해서 그 뒤를 따랐다.

 

나가세는 다시 온 하나무라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반가운 기색을 펼쳤다가 옆에 있는 사토나카를 발견하고는 눈을 가늘게 접었다. 한껏 음흉한 눈빛을 쏘는데 그걸 받아줄 기력이 없었다. 하나무라는 저를 뚫어질 듯 보는 나가세를 무시하며 다짜고짜 삼백 엔을 내밀고 말했다. 여덟 개 줘.

 

“손님. 저희는 6개에 300엔입니다. 메뉴판 좀 보세요.”

 

기다란 꼬챙이가 간판 바로 아래 붙은 메뉴판을 향했다.

 

“아까 2개 더 준댔잖아.”

“그건 아까잖아.”

 

더 이상 대꾸가 없었다. 더 투덜거릴 것을 예상하며 장난을 쳤는데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지니 나가세도 조금 당황한 눈치였다. 그는 다른 말을 하지 않고 미리 만들어둔 종이 포장지에 잘 익은 타코야끼를 담았다. 하나무라는 타코야끼를 받아들고 나서야 2개가 더 올라간 걸 발견했다. 나가세를 보자 슬쩍 시선을 피하더니 불판 닦는 척을 한다. 나중에 고맙다고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기껏 사긴 했으나 먹고 싶은 마음은 없었기에 하나무라는 뚜껑이 열린 그대로 상자를 사토나카에게 넘겼다. 오늘 같이 다녀줬으니까 주겠다며 떠넘겼더니 너 사실 먹기 싫어서 이러는 거지? 톡 쏜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맞는 말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하나무라는 어찌 알았냐며 장난처럼 응수했다. 그제야 사토나카의 입 꼬리가 쭉 당겨지며 웃는 낯이 됐다. 그러고 보니 농구코트에서 억지로 데려왔을 때부터 사토나카가 웃는 걸 본 기억이 없었다. 뒤늦게 좀 미안했다.

 

재즈연구부실로 사토나카를 데려다 주고 돌아오는 길에 주름이 진 자켓 소매를 손으로 꾹꾹 눌러 폈다. 어찌나 세게 묶었는지 좀처럼 주름이 가시질 않았다. 두어 번 행위를 반복한 뒤 언젠가 펴지겠거니 하며 내버려 뒀다. 기분이 옷에 진 구김처럼 좀처럼 빳빳하게 펴지질 않는다. 대신 내내 잊고 있던 휴대폰을 열자 연락이 몇 개 와 있었다. 쓸데없는 연락을 죄다 무시하고 하나무라는 가장 상단에 있는 메시지를 연다.

 

[차였냐?]

 

나가세였다. 어처구니없는 소리에 헛웃음을 뱉은 하나무라가 재빨리 자판을 눌렀다. 누가? 내가? 누구한테? 우다다 쏘아대는 말투로 메시지를 보내자 곧장 휴대폰이 부르르 진동을 냈다.

 

[아니면 말고.]

 

그리고 또 한 번.

 

[근데 진짜 아니야?]

 

더 이상 대답할 가치를 느끼지 못한 하나무라는 그대로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뭘 차여, 차이기는. 우린 서로 그런 의도가 하나도 없는데. 급격하게 기분이 안 좋아졌다. 곧장 집으로 가려다 말고 하나무라는 마트로 향했다. 가서 콜라랑 군것질거리를 좀 가져다가 왕창 먹고 게임이나 해야지 기분이 풀리겠다.

 

횡단보도를 두고 바로 앞 매장에서 잡동사니를 파는 걸 봤다. 길쭉하게 생긴 매대를 하나 펼쳐놓고 이상하게 생긴 머리끈과 인형, 용도가 무엇인지 모를 물건들이 늘어져 있었다. 신호를 기다리다 말고 시간을 죽일 겸 그걸 구경하던 하나무라는 제 눈 손바닥 반만 한 귤을 발견했다. 물론 진짜 귤은 아니었고 꼭지 끝에 키 체인이 달려 있었다.

 

묘하게 닮았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하나무라는 제 머리를 한 대 툭 쳤다. 매대를 지키던 직원이 놀란 듯 어깨를 떨자 급격하게 민망해진 하나무라는 아무렇지 않은 척 손을 내렸다. 아 미친 바보야. 그러고도 민망함이 가시질 않아 곧장 입부터 열었다.

 

“이거 얼마예요?”

 

질문은 한 번이었으나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그럴 생각은 없었는데 하나무라는 그걸 샀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손에 그걸 쥐어져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시선보다 조금 높이 귤 모양 키링을 들고 빤히 보면서 걷는 내내 기분이 멋쩍었다. 이걸 이제……어쩌냐? 왜 샀지, 이걸? 당장이라도 돌아가서 환불을 하는 게 맞는 것 같은데 그것도 별로 내키지 않았다. 하나무라는 스스로에게 어쩔 수 없다는 핑계를 대며 집까지 가는 방향을 틀지 않았다. 나중에 사토나카의 가방에 분홍색 곰이 달려있다면 기분이 진짜 구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솔직히 그 이상한 곰탱이 보다는 이게 더 낫지. 집에 도착할 즈음엔 그런 생각이 났다. 주머니에 키링을 쑤셔 넣으며 머릿속에서 누군가가 그래, 맞아 하며 동의를 표했다. 아주 조금 마음이 편해진 하나무라가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때마침 카운터에 서 있던 아빠가 이제 오냐며 인사를 했다.

 

“뭐하세요, 거기서?”

“요스케 너 이번 행사 날엔 풀타임 아르바이트 좀 해라.”

“네? 왜요?”

“이 녀석 버르장머리 없이 ‘왜요’라니!”

 

하나무라는 호통에도 아랑곳 않고 대꾸하는 대신 카운터 책상에 놓인 종이를 훔쳐본다. 이번 달 할인에 관한 것이 대충 기재되어 있었다. 포스터 발주를 넣기 전인지 행사 목록에 줄지어 선 상품들 사이로 볼펜으로 죽죽 그어 지우고 새로 추가된 것들이 많았다. 눈으로 목록을 훑다가 하나무라는 문득 그 사이에 고기가 없는 것을 깨달았다.

 

“이번엔 고기 행사 안 해요?”

“요새 경기가 영 시원찮아서 고기까지 하기엔 부담이 커서 안 돼.”

 

그 말에 하나무라는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입을 뗀다.

 

“그럼 제가 알바 비를 좀 덜 받을게요.”

“뭐?”

“그, 뭐냐. 어차피 행사하는 거 고기가 빠지면 좀 그렇잖아요. 앙금 없는 빵 같고….”

 

당황해서 말이 길어지는 하나무라를 두고 아빠는 만면 가득 미소를 지었다. 이 자식 아주 다 컸네, 다 컸어. 집 생각도 하고 말이야. 두툼한 손이 퍽퍽 등을 치더니 곧장 종이 위로 고기를 써넣었다. 얹어 맞은 등짝이 아렸으나 마음은 만족스러웠다. 이 정도면 사토나카가 쥬네스에 올 명분이 확실했다. 하나무라는 주머니에 손을 찔러 놓고 손에 잡히는 대로 키링을 문질렀다. 이전보다 적게 들어올 알바 비를 머리로 대충 계산해보자 입 안이 썼으나 딱히 돈이 필요하지도 않았기에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가령 사토나카의 가방에 분홍색 곰 대신 귤이 달려 있다던가 하는.

 

그리고 하나무라는 그 괴상망측한 분홍색 곰보다는 역시 이게 더 사토나카에게 잘 어울린다고 재차 생각 했다.

 

 

우리는 우리를 모르고 結

 

 

 

 

 

*커미션 작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