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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노신아제노] 비밀이야

*약간 제노아비 요소가 있습니다.




눈을 떴을 땐 아직 새벽이었다. 제노는 졸린 눈을 깜빡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은은한 달빛에 곤히 잠든 일행이 비쳤다. 분위기로 보건대, 잠이든지 얼마 되지 않은 듯했다. 어째서 지금 깼을까. 다시 잠을 청하려 몸을 비틀자 바로 옆에 웅크리고 누운 신아가 보였다. 머리 위로 올라간 가면 아래 드러난 얼굴이 달빛을 받아 더욱 창백한 빛을 했다.

 

-청룡. 지난 세월 수많은 청룡을 몰래 만나보았으나 제노에게 있어 그 이름을 부르면 떠오르는 이는 하나였다. 아비. 비룡성을 떠날 때 울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 빨갛게 부은 눈은 마주 보지 않고 바닥에 쌓인 눈인지 옷자락인지 그쯤에 머물렀다. 눈을 보여 달라고 말했는데 거기만 보고 있으면 어떡해. 밉지 않은 타박은 속으로만 삼켰다. 물에 젖은 황금빛 눈동자. 그리고 이름으로 불러주는 걸 좋아했다. 그리운 기억이 마음을 촉촉하게 적신다. 제노는 신아의 감은 눈두덩이 위로 손가락을 올렸다.

 

으음.”

 

닮았나? 기억 속에 남은 초대 청룡과 지금의 청룡은 어딘가 비슷했다. 외관보다는 분위기가 그러했다. 성격은 좀 다를지도. 아비는 신아와 달리 말이 날카로웠고 화를 잘 냈으니까. 애정이 담겨 있으니 싫은 적은 없다.

 

보고 싶네.”

 

아득히 먼 옛날의 기억에 마음이 뭉근하게 젖어 들었다.

 

 

비밀이야

제노신아제노

 

 

어느새 잠이 들었던 듯했다. 중간에 한 번 잠이 깼으니 늦잠을 자겠거니 했는데 오늘은 영 잠과 친해질 수 없는 날인가보다.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귀를 간지럽히는 바람에 제노는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눈을 뜨고서도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천막을 걷고 누군가 나가는 소리가 났다. 누굴까. 의식이 깨어나고서야 신아의 자리가 빈 것이 보였다.

 

뒤늦게 제노도 천막을 나왔다. 아직 자는 이를 깨우지 않도록 조심스러운 몸짓이었다. 이제 막 동이 트기 시작한 공기는 축축하고 싸늘했다. 신아가 나가고 곧장 따라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신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그때, 멀리서 물 첨벙 이는 소리가 났다. 어제 개울 근처에 천막을 쳤던 것이 기억이 났다. 직감적으로 개울가에 청룡이 있는 것이 느껴졌다. 제노는 천천히 신아가 있을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뒤에서 들리는 발소리에 신아가 고개를 돌렸다. 부스스한 노란 머리카락. 제노였다.

 

일찍 일어났네, 청룡.”

 

신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던 제노가 잠시 걸음을 멈추고 부드럽게 웃자 이번엔 신아가 다급히 바닥에 벗어둔 가면을 썼다. 귀엽네. 그제야 종종 걸음으로 옆에 가 앉았다. 뺨에서 흐른 물이 턱을 타고 뚝뚝 떨어졌다.

 

세수했어? 얼굴 닦고 쓰는 게 낫지 않을까?”

…….”

괜찮아! 제노는 청룡의 눈 많이 봤고, 몸도 튼튼하고.”

 

불쑥. 신아에게 얼굴을 바짝 붙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초대 청룡과는 이렇게 가까이에서 눈을 봤는걸!”

 

갑작스런 움직임에 놀란 신아가 흠칫 어깨를 떨자 제노는 그것이 재밌다는 듯이 하하하 크게 웃었다. 신경 쓰이면 제노는 세수하고 있을 테니까. 가면을 벗을 생각도 않고 가만히 있는 신아를 뒤로 하고 제노는 개울물에 손을 담궜다. 날이 따뜻해서 물은 그다지 차갑지 않았다. 푸하. 세수를 끝마치고서야 마른 수건을 가져오지 않았음이 떠올랐다. 어쩔 수 없구만.

 

청룡. 제노도 수건~”

 

덜 뜬 눈으로 그랬다. 손바닥 위로 얹어진 수건으로 물을 닦아내며 청룡은 참 착하네, 하는 생각을 했다. 귀여워, 귀여워. 흐뭇한 마음으로 고마움을 전하고자 눈을 뜬 제노는 잠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황금빛 눈동자가 그 자리에서 제노는 삼키듯 빛나고 있었다.

 

타인에게 눈을 보이기 싫어하는 아이가 젖은 얼굴을 닦고서도 가면을 쓰지 않았다. 마치 제노가 보기를 기다리기라도 한 것처럼.

 

제노를 신경써주는 거야? 고마워.”

 

신아의 입술이 무슨 말을 할 것처럼 벌어지더니 다시 꾹 닫혔다. 한참 공백을 두고 다시 열린 입술에서 나온 건 그의 심성만큼이나 다정한 말이었다.

 

보고 싶을 것 같아서.”

 

무엇을? 이라고 묻는 건 짖굿다. 초대의 얘기를 꺼낸 것에 마음을 쓸 줄은 몰랐는데. 야릇한 죄책감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사무치게 그리운 적이 분명 있었다. 지금도 무척이나 그립지만, 겨우 견딜만한 것이 되었다. 그러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아.

 

청룡의 눈동자는 무척 예뻐서 쉽게 잊어버리기 힘드니까.”

 

간밤에 신아의 얼굴에서 아비를 발견한 탓이었다. 이제 와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버려서 눈앞에 있는 아이를 소외시킬 순 없었다. 게다가 굳이 눈앞에 청룡을 두고서 이천 년이나 훌쩍 지나간 청룡을 떠올릴 필요는 없었다. 왜냐면 지금 보고 있는 눈동자도 무척이나.

 

신아의 눈은 정말 예뻐.”

 

한참은 잊지 못할 것이었다. 기특한 마음에 제노가 짧은 머리칼 위로 손을 올렸다. 아비였다면 여기서 한 마디 톡 쏘아붙였을 게 뻔했다. 신아는 얌전하네. 손가락 사이를 부드러운 머리칼이 간지럽혔다. 무표정하던 얼굴이 놀란 듯 눈동자가 동그랗게 변해있었다.

 

왜 그래?”

제노가 이름으로 처음 불렀어.”

이름으로 부르는 걸 좋아한 사람을 알거든.”

 

그래. 이런 섬세한 점이 닮았어. 너무 섬세해서 상처 받고 틀어박힌 너처럼 말이야.

 

그건, 제노 이야기야?”

 

? 돌아온 말은 너무도 의외였다. 제노는 눈을 크게 뜨고 신아의 표정을 살폈다. 조금 돌아간 고개가 잘 모른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또한 누군가 불러주길 바랐기 때문에 스스로 부르기로 정했으니까.

 

신아는 귀엽네!”

 

참을 수 없는 기분에 제노는 신아를 끌어안았다. 한참 큰 몸을 다 안을 수 없어 목을 끌어안으니 신아가 자연스레 허리를 구부려 높이를 맞춰주었다.

 

제노도 귀여워.”

 

티끌 한 점 없는 깨끗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한 마디에 마음이 간질간질했다. 몽글몽글하고 마음이 따뜻해지는 기분. 이런 걸 사랑스럽다고 한다는 것쯤 제노가 모를 리 없었다. 한참 꼭 끌어안고 있던 몸을 놓아주고 대신 양 볼을 살며시 감싸 쥐었다. 낮은 온기가 손안에 퍼졌다. 그대로 조금 끌어당기며 눈을 감고서 얼굴을 갖다 댔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입술이 맞붙었다 떨어지며 수줍게 쪽 소리를 만들었다.

 

모두에겐 비밀이야?”

 

그대로 멈춰버린 신아와 눈을 맞추고서 제노는 부드럽게 말했다. 멀리서 윤의 목소리가 들렸다. 신아가 뒤늦게 고개를 끄덕이자 제노가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폈다. , 밥 먹으러 가자! 아침밥-!

 

가자, 청룡!”

 

천막을 향해 걷던 제노가 돌아보는 모습에 신아도 쭈그렸던 다리를 폈다. 좀 전에 닿았던 입술이 따뜻했다. 너무나 빨리 떨어졌지만 느꼈던 감각은 확실히 남았다. 이런 기분을 설렘이라고 한다는 것을 알기까지 그리 멀지도 않았다. 신아는 이른 아침에 태어난 비밀을 가슴에 묻고 제노의 뒤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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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재활 개힘듬;

암튼 새연 첫 연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