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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러프] 고양이를 부탁해

*리퀘 학원물au 테일즈런너 카이러프

*하나부터 열까지 날조가 가득함

 

 

학교란 도무지 정을 붙일 수 없는 집단이었다. 같은 교복을 입고 나란히 행렬을 맞춰 앉아 있지만, 카이는 꼭 자신이 우주를 부유하는 먼지처럼 어느 곳에도 정착하지 못하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같은 반에 앉아 있는 학생들이 나쁘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저 그들과 자신은 물과 기름만큼이나 달랐고 그만큼 섞일 수 없는 존재였다. 성질이 다른 것을 같은 것처럼 꾸며 모아 놓은들 아무런 위화감 없이 유대를 찾는 게 가능 할 리 없었다.

 

좋은 것이라곤 눈곱만치도 없는 학교를 꼬박꼬박 나오는 건 순전히 닥터헬의 당부 때문이었다. 학교를 다녔으면 좋겠다는 말에 카이는 싫은 표정을 했지만, 어쨌든 닥터헬의 말을 듣지 않는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카이가 작은 치즈냥을 발견한 건 5월이었다. 벚꽃은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남은 봄기운이 얄팍한 가지 끝에 매달려 있던 어느 날, 카이는 아프다는 말을 변명삼아 양호실에서 시간을 때웠다. 양호실 침대의 딱딱한 쿠션이 불편해 영 잠에 들지 못하고 뒤척이던 즈음 창 너머로 고양이 한 마리가 다가왔다. 좁은 턱에 다리를 걸친 고양이는 무엇이 신기한지 갈색 눈동자로 안을 들여다보며 꼬리를 살랑거렸다.

 

학교에 고양이는 독특한 조합이었다. 길고양이라고 하기엔 노란색 털이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누군가 애완동물을 데려온 건가? 엉뚱한 생각이 들었으나 금세 터무니없음을 인정했다. 주인이 있는 것처럼 잘 다듬어진 외관의 고양이는 한참이나 그곳을 떠나지 않고 하품을 하더니 똬리를 틀었다. 카이는 고양이를 자신과 같은 이방인처럼 느꼈다. 이곳에 있지 않아야 한다, 라는 기묘한 동질감은 두 사람의 거리감을 좁히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카이는 조용히 양호실을 빠져나왔다. 기껏 찾은 동료를 창 하나를 두고가 아닌, 직접 만나보고 싶었다. 건물을 돌아 양호실 창이 난 곳까지 가니 고양이는 아직 눈을 감고 볕을 쬐고 있었다. 카이는 조용히 곁으로 다가가 작은 머리를 손끝으로 건드려보았다. 고양이는 갸르릉 기분 좋은 숨소리를 뱉더니 두 귀가 축 늘어졌다. 그것이 더 만져도 좋다는 허락 같아 카이는 과감히 손바닥을 머리에 찰싹 붙였다.

 

. 너 왜 여기서 자냐?”

 

고양이가 대답하듯 야옹 소리를 냈다.

 

여기가 네 지정석이라고?”

 

이번엔 대답하지 않는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카이는 고양이가 잠에 빠져드는 과정을 지켜보았다. 긴 꼬리가 살랑살랑 움직이더니 몸에 착 붙었다.

 

누구?”

 

낯선 목소리에 카이가 등을 돌렸다. 왼쪽 귀의 붉은색 십자가 귀걸이가 눈에 띄는 은발의 남자였다. 교복을 입고 있는 것을 보니 학생인 듯싶었다. 수업이 끝나는 종소리를 들은 적은 없으니 아마 이 녀석도 땡땡이를 쳤겠거니 쉽게 짐작이 되었다.

 

그럼 넌 누군데?”

 

카이의 목소리엔 가시가 돋아 있었다.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이 자신에 대해 묻는 게 영 달갑지 않았다. 나에 대해서 알면 어쩌려고? 묻지 못한 말이 카이의 마음에 남았다. 남자는 입술을 길게 늘여 웃더니 자신을 러프라고 소개했다. 그러더니 손을 들어 카이를 가리켰다. 자신을 향한 손가락의 의도를 알 수가 없어 카이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 고양이 내가 돌보는 고양이야.”

 

고양이. 카이는 제 옆에서 잠이든 고양이를 보았다. 주인이 있는 고양이였다. 배신감은 썰물처럼 카이를 집어 삼켰다. 나와 같은 이방인이라고 생각했는데. 멋대로 쌓은 기대는 모래성보다도 가볍게 허물어졌고 남은 것은 허탈한 공허함이었다. 카이는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고 싶지 않았다. 또 다시 우주선 하나 없는 우주에 홀로 남겨진 기분이었다. 러프가 무언가 더 말을 이었으나 카이에게 들리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이곳은 카이가 있을 곳이 아니었다. 카이는 망설이지 않고 러프의 곁을 지나쳐 뒤뜰을 벗어났다.

 

또 보러와.”

 

등 뒤로 닿는 말에 마음이 울렁거렸다. 불쾌했다.

 

 

텁텁한 기분을 남긴 기묘한 만남에 대해 카이는 닥터헬에게 투정 부리듯 늘어놓았다. 닥터헬은 불쾌한 일이 있었다.’는 카이의 말에 심각한 얼굴로 이야기를 듣더니 종래에는 흐뭇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카이의 말이 끝날 때엔, 꼭 그곳에 다시 가보라는 조언도 잊지 않았다. 내가 거길 왜 가느냐고 따졌으나 닥터헬은 웃기만 할 뿐이었다.

 

두 번째로 오는 뒤뜰은 처음이랑 다를 것도 없었다. 여전히 공기는 살랑거렸고 걸친 교복은 이질적이었다. 그때와 다른 점이 있다면 고양이와 함께 러프가 먼저 와 있었다는 점이다. 고양이는 빈 플라스틱 그릇에 코를 박고 까드득 소리를 내며 사료를 씹고 있었고 러프는 그 앞에 쪼그리고 앉아 고양이의 머리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카이가 오자 러프는 눈짓만으로 가까이 다가오라 말했다.

 

조금만 더 일찍 왔으면 나비한테 밥 줄 수 있었는데 아쉽게 됐네.”

 

러프의 말에 카이가 혀를 찼다.

 

하나도 안 아쉬운데.”

고양이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안 좋아해.”

, 거짓말 같은데?”

 

혼잣말처럼 읊조리는 소리에 카이가 다시 한번 안 좋아해, 라고 말했다. 이런 조그마한 고양이를 좋아하든 안 좋아하든 별로 중요하지 않았으나 러프가 제멋대로 오해하는 것이 어쩐지 싫었다. 대화가 끊기니 사료 씹는 소리가 선명했다. 제 몸만 한 플라스틱 그릇 속으로 들어갈 것처럼 몸을 숙인 고양이를 보던 카이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나비?”

이 녀석 이름이야. 내가 지어줬어.”

 

바이크를 세워놓은 골목에서 얼쩡거리는 걸 여기로 데려왔다고 말하며 러프는 그 날을 회상하며 몸서리를 쳤다. 먼저 러프에게 다가온 건 나비였다. 전봇대 옆으로 쓰레기가 버려진 골목은 길고양이가 살기에 적당한 환경이었을 테다. 타고 온 바이크를 학교에 들고 들어갈 수 없으니 사람의 왕래가 적어 보이는 골목에 세워두었는데, 자신의 영역에 들어온 거대한 몸체가 신경 쓰인 나비가 바이크 근처를 빙빙 돌았다. 바이크가 잘 있는지 보러 온 러프에게 목격된 최초의 장면이었다. 그 후엔 바이크에 앞발을 갖다 대기까지 했다고 말하는 러프는 꽤 신이난 목소리였다.

 

꽤 신뢰가 생겼는지 이 녀석이 내가 시동을 걸자마자 앞으로 튀어나오는 거야.”

 

출발을 하지 않아 다행이었다고 말하는 러프는 안심한 표정으로 고양이를 내려다보았다. 다행히 사고가 나지는 않았으나, 그대로 두었다간 나비가 위험해질 것 같아 학교 안으로 데려와 이름을 붙이고 밥을 주게 되었다는 이야기는 카이에겐 영 낯설었다. 자신이 들어도 될 만한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고작 두 번 만난 사이였다. 처음 만난 날 이름을 듣고, 두 번째 만난 날엔 고양이와의 추억을 들었다. 물과 기름처럼 단단한 층으로 나누어진 사이에, 거리가 너무 가까웠다.

 

그딴 건 고양이를 좋아하는 녀석한테나 말해.”

 

러프가 좁혀온 거리는 마음을 일렁거리게 만들었다. 툴툴거리는 말 한마디로 사이를 다시 벌릴 수 있을지는 몰랐으나, 카이는 본능적으로 벽을 둘렀다. 일종의 보호막이었다.

 

정말 나비한테 관심 없어? 그때 네가 키우는 고양이처럼 쓰다듬었잖아.”

그런 적 없어.”

 

답답할 정도로 부정하는 소리에 러프는 입을 꾹 닫았다. 그 사이 밥을 다 먹은 나비가 야옹하고 크게 울었다. 러프가 반응이 없자 나비는 야옹, 하고 울며 러프의 종아리에 딱 달라붙어 머리를 부비적거렸다. 쓰다듬어달라는 제스쳐에 러프가 손끝으로 나비의 턱을 긁었다.

 

너 진짜 고집 세다.”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이상하게도 그 말을 듣자마자 카이는 기분이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마음이 일렁거리는 불쾌함과는 전혀 달랐다. 차라리 알 수 없는 일렁거림을 느끼는 쪽이 나은 거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난 원래 이래.”

 

이곳에 왜 다시 왔는가에 대한 후회가 물밀 듯이 밀려왔다. 만들 수 없는 관계를 처음부터 피하지 않은 어리석음에 짜증이 치밀었다. 두 번의 만남으로 종결될 만남은 불쾌함만 남았다. 카이는 닥터헬의 말을 곧이곧대로 들은 자신의 멍청함을 탓했다.

 

, 알겠어. 그럼 아닌 걸로 할 테니까 얘 밥이나 가끔 챙겨줘.”

 

결심을 하도록 러프는 내버려두질 않았다. 못 챙겨줄 때가 있으니까 너도 같이 해. 막무가내 명령에 머리끝까지 올라온 짜증이 폭발했다. , 안 한다고. 울컥한 목소리로 말하니 러프는 넌 얘가 죽었으면 좋겠어? 하고 말했다. 애꿎은 고양이가 죽긴 왜 죽어? 따지듯 묻자 길고양이니까 보살펴주는 사람이 없으면 죽을 지도 모르잖아, 했다.

 

논쟁엔 논리가 결여되어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닫자마자 카이는 맥이 탁 풀림을 느꼈다. 더 이상 따지고 드는 것에 의미가 없는 게 아닌가를 생각하며 이제는 러프의 발치에서 몸을 말고 낮잠을 잘 준비를 하는 고양이를 보았다. 아 참참.

 

너 이름이 뭐야?”

 

카이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계속 너너, 라고 부르는 게 두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닌 것 같았다.

 

카이.”

 

그래, 카이. 나 없을 때 나비를 부탁한다. 러프의 귀걸이가 햇빛을 받아 반짝거렸다.

광활한 우주를 표류하는 카이에게 다가온 최초의 우주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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